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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줄거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된 시기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집입니다. 표제작을 포함해 총 12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들 작품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김불이 가족’이라는 인물군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주인공 가족이 살아가는 현실을 통해, 그 시대 서민들이 겪는 빈곤, 철거, 노동착취, 교육 기회 상실, 사회적 소외 등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룹니다.
작품의 시작: 철거 위기와 가난한 일상
작품은 김불이 가족이 서울의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버지 김불이는 키 106cm의 ‘난장이’로, 고철을 주우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의 아내는 가정을 돌보며 자녀 교육을 위해 헌신하지만, 현실은 고단하기만 합니다.
세 자녀인 영수, 영호, 영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가난과 싸우고 있지만, 점점 그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그들이 사는 지역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시로부터 철거 통보를 받습니다.
강제 철거는 순식간에 진행되고, 경찰과 용역이 투입되어 주민들을 몰아냅니다.
김불이 가족 역시 집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각 단편은 가족 구성원과 주변 인물들의 삶의 단면을 조각처럼 보여주는 구조로 진행됩니다.
아버지 김불이의 환상과 무력함
표제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는 김불이의 내면세계가 중심입니다.
그는 가족을 위해 현실을 견디지만, 점차 ‘달나라에 집을 짓자’는 환상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가 쏘아 올리는 ‘작은 공’은 사회 구조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자, 더 나은 삶에 대한 환상과 탈출 욕망의 상징입니다.
이 장면은 비극적인 삶 속에서조차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동시에 무력하고 허망한 저항을 암시합니다.
장남 영수의 이상과 좌절 – <칼날>,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영수는 가족 중 가장 이상주의적인 인물입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대학에 진학하지만, 가난 때문에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신문을 읽으며 세상과 사회 구조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결국 영수는 비정규직, 막노동에 뛰어들며 생계유지를 선택합니다.
작품 <칼날>에서는 그가 이중적인 사회 구조에 분노를 느끼며 고뇌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묘사됩니다.
이상의 추구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차남 영호의 분노와 폭력 – <우상과 이성애>
영호는 형과 달리 현실에 대해 분노와 저항으로 반응하는 인물입니다.
청년으로서의 분노는 사회를 향한 직접적인 반항으로 이어지며, 그는 비행과 폭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대로 살아서 뭐 하냐’는 식의 냉소와 허무주의가 그를 지배합니다.
작품 <우상과 이성애>에서는 영호가 교회, 언론, 권력 등 당시 한국 사회의 기성질서에 대해 냉소적 시선을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사랑조차 사회 구조 속의 또 다른 도구로 느끼며, 점점 고립됩니다.
막내딸 영희의 고통 – <육교 위에서>
영희는 어리고 순수한 여성 노동자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봉제공장에 취직하지만, 그곳은 인간 존엄이 없는 공간입니다.
긴 노동시간, 저임금, 안전하지 않은 환경, 성적 괴롭힘 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점점 망가져갑니다.
작품 <육교 위에서>에서는 그녀가 현실의 벽 앞에서 절망과 외로움에 휩싸인 장면이 그려집니다.
육교 위에 선 그녀의 모습은 죽음을 암시하기도 하며, 그녀의 삶이 얼마나 취약하고 고립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외 단편들: 구조적 폭력의 스펙트럼
- <뫼비우스의 띠>: 반복되는 빈곤과 고통의 순환 구조를 보여주며, 가난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그립니다.
- <빈자들의 축제>: 철거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박한 축제를 열지만, 곧 경찰의 폭력에 의해 무산되며, 서민의 기쁨마저 부정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 <궤도회로>: 기계처럼 반복되는 공장 노동의 현실과,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보는 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합니다.
결말: 희망 없는 미래와 독자에 대한 질문
작품은 뚜렷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김불이 가족은 각자 제 몫의 고통을 짊어진 채 세상 속으로 흩어지며, 끝내 ‘구원’이나 ‘탈출’을 얻지 못합니다.
그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고, 오히려 더 가혹해지며 우리 사회가 외면한 이면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습니다.
소설은 독자에게 화려한 서사나 극적인 감동을 제공하기보다는,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라는 도덕적 질문을 남깁니다.
2. 등장인물
1) 김불이 (난장이 아버지)
- 키: 106cm
- 직업: 고철과 폐품을 주우며 생계유지
- 성격: 순수하고 자상하지만 현실에 점점 무력해짐
- 상징성: 사회적 약자, 무시당하는 계층, 희망과 환상의 이중성
김불이는 이 소설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 신체적 ‘난쟁이’라는 외형은 곧 사회적 소외와 경제적 약자를 상징합니다. 그는 가족을 위해 성실히 살아가며, ‘달나라에 집을 지어 이사 가자’는 말처럼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시대의 폭력 앞에 무력해지며, 끝내 자신이 믿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의 존재는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입니다.
2) 김불이 아내 (어머니)
- 직업: 무직(가사와 자녀 양육에 헌신)
- 성격: 강인하고 현실적인 인물
- 상징성: 가정의 중심축, 시대의 고통을 견디는 여성
어머니는 남편보다 현실에 좀 더 단단하게 맞서며, 자녀 교육에 희망을 걸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작은 일까지 도맡으며, 늘 자녀 걱정에 잠을 설치는 ‘현실적 어머니상’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존재는 가부장제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는 중심축으로서의 여성을 잘 드러냅니다.
3) 영수 (장남)
- 나이: 10대 후반 ~ 20대 초반
- 특징: 공부를 잘하고 정의감이 강하지만, 가난으로 좌절
- 상징성: 꿈과 현실 사이의 갈등, 지식인의 양심
영수는 가난한 집안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합니다.
그는 나름의 이상과 정의감을 갖고 현실을 바라보지만, 계속되는 가난과 사회의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됩니다. 그는 사회적 모순을 인식하지만 체제를 바꿀 힘은 없는 현실 속 지식인의 초상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4) 영호 (차남)
- 성격: 반항적이고 거칠며 현실에 냉소적
- 행동: 사회에 대한 분노로 도박, 싸움 등 비행을 저지름
- 상징성: 저항과 파괴의 상징, 체제의 희생자
영호는 형 영수와 대조적으로, 직설적이고 저항적인 방식으로 현실과 마주합니다. 그는 “이대로 살아서 뭐 하냐”는 심정으로, 사회 질서와 제도를 신뢰하지 않으며, 때로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 이면에는 가난이 만든 분노와 상실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호는 산업화 속 ‘낙오자’가 아닌, 제도적 폭력의 희생자입니다.
5) 영희 (막내딸)
- 직업: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
- 특징: 착하고 순종적이지만, 성적·노동 착취에 시달림
- 상징성: 여성 노동자, 이중고의 희생자
영희는 어린 나이에 가족 생계를 위해 공장에 취직합니다. 그녀는 성실하지만, 공장에서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상사의 성적 대상화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 노출됩니다.
그녀는 그저 열심히 살고 싶을 뿐인데, 그마저도 성별과 계급 때문에 위협받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영희는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대변합니다.
6) 용역, 철거반, 재개발업자들
- 역할: 국가 또는 자본 권력의 대리인
- 행동: 철거를 강행하고, 주민을 폭력적으로 몰아냄
- 상징성: 비인간적인 권력, 제도적 폭력
이들은 작중에서 직접적인 악역은 아니지만, 주민의 삶을 파괴하는 중심축입니다. 헐값에 강제 수용을 진행하고, 반항하는 주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결과적으로 사람의 존엄과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이들은 ‘개발’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국가-자본 결탁의 상징물입니다.
7) 기타 인물들
- 공장 동료들: 영희와 함께 일하며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
- 이웃 주민들: 철거 대상이 된 다른 빈민가 주민들. 함께 저항하거나 흩어짐
- 학생 운동가: 영수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는, 현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인물들
이들은 개별적 서사가 깊진 않지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의 구조적 폭력에 희생당하거나 저항하는 인물들로서 기능합니다.
인물 | 역할 | 상징 |
---|---|---|
김불이 | 난장이 가장 | 사회적 약자, 희망의 상징 |
어머니 | 가정 유지 | 헌신과 현실 대응 |
영수 | 장남 | 좌절한 이상, 청년 지식인 |
영호 | 차남 | 저항과 분노, 체제의 희생자 |
영희 | 막내딸 | 여성 노동자의 현실 |
철거반·용역 | 권력 대리인 | 제도적 폭력 |
주민들·동료들 | 배경인물 | 시대 피해자들 |
3. 핵심 분석
1) 산업화의 이면: 개발이라는 이름의 폭력
197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과 ‘근대화’를 앞세워 도시를 개발하고 산업을 키우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서민들은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작품 속 철거민들은 철거를 당해도, 보상금도, 대책도 없습니다. 그들의 삶은 개발 이익 앞에서 하찮은 존재로 취급됩니다. ‘도시 재개발’은 마치 현대판 봉건제처럼, 약자의 삶을 빼앗아 강자에게 넘겨주는 구조로 묘사됩니다.
- 상징적 예: 집을 잃고 떠도는 김불이 가족, 힘없는 주민들의 절규
- 비판적 시각: 개발이 곧 진보인가?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2) 인간의 존엄과 그 붕괴
이 작품에서 가장 큰 테마는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잃어가는가입니다. 김불이 가족은 처음엔 작은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철거, 해고, 착취, 죽음 같은 사건들이 반복되며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조차 박탈됩니다.
특히, 딸 영희의 이야기는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이중고(성적 대상화 + 노동 착취)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 김불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달나라 같은 ‘환상’으로 도피
- 영수: 이상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그 이상을 스스로 포기
- 영호: 체제에 반항하지만, 결국 범죄자로 몰리며 배제당함
이는 단순한 가족의 비극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잃게 만드는 사회 구조의 문제입니다.
3) ‘작은 공’의 의미: 저항인가 환상인가
표제작에서 김불이는 ‘작은 공’을 쏘아 올립니다. 이 장면은 소설 전체의 상징적 정점이며, 난쟁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자, 사회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 공은 곧 사라지고, 현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독자에게는 희망과 무력함이 공존하는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이처럼 소설은 화려한 해결책이나 영웅 서사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은 이토록 차갑고, 우리는 그것을 직시할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